Manuscripts

기록

필름 원판은 광양시에 기증했지만, 일기와 취재 메모, 그림은 유족이 그대로 보유하고 있습니다. 캡션을 바로잡는 근거가 여기서 나옵니다.

13건
등재 자료
8건
전문 공개
Primary Sources

전체 기록

1944.05.02편지공개

신혼 초 이경모가 부인에게 쓴 편지

당시 이경모는 광주에, 부인은 광양에 거주하였다. 일본어 번역 이태우.

1948.06.25유품부분 공개

호남신문사 신분증명서 (서기 1948.06.25)

여수·순천 10.19 사건 발생 약 4개월 전 호남신문사 본사 사진부장이 되었다.

1948.10메모연구자 열람

취재 수첩

여수·순천 10.19 사건 3개월 간의 취재 수첩이다.

1949.11.10유품부분 공개

제5사단 출입기자증 (단기 4282.11.10)

발급자 백선엽은 1949년 당시 보병제5사단장 육군 대령이였고 사단사령부가 광주에 있었고, 여순사건 이후 호남 지역 작전을 지휘하던 시기이다.

관련 사진AC_APM_S1.3_00126
1950.10.12유품공개

국방부 정훈국 보도과 사진대원증 (단기 4283.10.12)

1950.11.01유품부분 공개

국방부 정훈국 신분증명서 (단기 4283.11.01)

1950.11.09유품공개

국방부 정훈국 출장증명서 (단기 4283.11.09)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연혁을 보면 1950년 10월에 국방부 정훈국 전사편찬회가 설치되었다. 전사 기록용 사진은 전선이 아니라 이미 끝난 전투의 현장을 찍는 작업이다. 포항은 8~9월 격전지였다가 11월에는 완전한 후방이였다. 발급자 이선근 11월 대령, 12월 준장 그 사이 진급하였다.

1950.12.03유품공개

국방부 정훈국 출장증명서 (단기 4283.12.03)

1950년 12월 3일이면 중공군 2차 공세 직후이고 평양 철수가 12월 4일, 흥남 철수가 12월 중순이다. 전선이 급격히 밀리던 시점에 춘천으로 촬영을 나간 기록이다.

1951.03.08유품부분 공개

한국사진보도사 신분증명서 (단기 4284.03.08)

1951.03.27유품공개

한국사진신문사 신분증명서 (단기 4284.03.27)

1951.04.25유품공개

한국사진신문사 보도증

1953.09.01유품공개

국무총리비서실 공무원증

1958.10.01유품공개

육군본부보도실 종군 작가증

Access

공개 등급에 관하여

일기와 메모에는 생존 인물과 그 후손에 관한 내용이 포함될 수 있어 전량 공개하지 않습니다. 네 단계로 나누어 관리하며, 비공개 자료도 존재 사실은 목록에 남깁니다.

공개

판독 전문을 그대로 게시합니다.

부분 공개

일부 문장을 가리고 게시합니다.

연구자 열람

신청 후 열람 가능. 연구 목적에 한합니다.

비공개 · 목록만

제목과 작성 시기만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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